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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구 명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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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기 구 명인전은 1962년 일본에서 개최된 바둑 기전으로, 13명의 정상급 기사들이 풀 리그 방식으로 경쟁하여 우승자를 가렸다. 후지사와 히데유키가 9승 3패의 성적으로 우승했으며, 오청원은 후지사와와 동률을 기록했으나 빅승으로 인해 2위에 머물렀다. 이 대회는 덤 5집, 빅 백승을 적용했으며, 총 78국을 이틀에 걸쳐 10시간 제한 시간으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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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구 명인전
제1기 명인전 (구)
흑: 하시모토 우타로, 백: 스미요시 하루오
흑: 하시모토 우타로, 백: 스미요시 하루오
타이틀명인
주최요미우리 신문
기전명인전 (일본)
참가 자격일본기원 소속 기사
전기 우승자없음 (초대)
일정
도전 결정 리그전1961년 9월 ~ 1962년 8월
도전수1962년 9월 27일 ~ 11월 8일
결과
우승자하시모토 우타로
도전수하시모토 우타로
명인스미요시 하루오
대국 결과하시모토 우타로, 4승 2패로 승리
리그 참가자
관련 문서
다음 기전제2기 명인전 (구)

2. 대회 방식

1기 명인전은 13명의 정상급 기사들이 풀 리그를 통해 1위를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덤은 5집이었고, 빅(무승부)은 백승으로 처리되었다. 제한시간은 각자 10시간이었으며, 대국은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당시 오청원 9단에게 먼저 명인위를 수여하고 도전자 결정전을 통해 도전기를 치르는 방식도 고려되었으나, 오청원 9단을 포함한 13명이 풀 리그를 진행하여 1위를 명인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1961년 1월 18일부터 1962년 8월 9일까지 총 78국이 진행되었으며, 후지사와 히데유키가 첫 명인이 되었다.

구분일정
본선1961년 1월 18일 - 1962년 8월 9일



오청원 9단은 후지사와 히데유키와 같은 9승 3패를 기록했지만, 백으로 빅승을 한 경기가 있어 명인위를 놓치는 불운을 겪었다. 총 78국 중 77국까지 빅이 한 번도 나오지 않다가 마지막 78국 오청원 9단의 대국에서 빅이 나오면서 명인위의 주인공이 결정되었다.

2기 대회부터는 명인 타이틀 보유자에게 도전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는데, 리그 성적 상위 6명은 차기 본선 리그에 자동 진출하고 최종 예선 통과자 3명이 본선에 합류하여 총 9명이 본선 리그를 진행하는 방식은 이후 명인전의 기본 틀로 자리 잡았다.

2. 1. 참가 기사

당시 일본 바둑계를 대표하는 13명의 정상급 기사들이 참가하였다. 오청원, 기타니 미노루, 후지사와 호사이, 사카타 에이오, 다카가와 가쿠, 시마무라 도시히로, 미야시타 히데오, 스기우치 마사오, 하시모토 우타로, 하시모토 쇼지, 한다 도겐, 이와타 다쓰아키, 후지사와 히데유키가 참가했다. 간사이 기원의 구보우치 히데토모 9단은 승단 시기가 늦어 일본기원과의 협의 끝에 불참하였다.

기사명후지사와 히데유키오청원사카타 에이오한다 도겐기타니 미노루하시모토 쇼지후지사와 호사이시마무라 도시히로미야시타 히데오스기우치 마사오이와타 다쓰아키다카가와 가쿠하시모토 우타로성적순위
후지사와 히데유키 (藤沢秀行)-
9승 3패1위
오청원 (吳淸源)
-
9승 3패2위
사카타 에이오 (坂田榮男)
-
8승 4패3위
한다 도겐 (半田道玄)
-
7승 5패4위
기타니 미노루 (木谷實)
-
7승 5패4위
하시모토 쇼지 (橋本昌二)
-
7승 5패4위
후지사와 호사이(藤沢朋斎)
-
6승 6패7위
시마무라 도시히로 (島村利博)
-
5승 7패탈락
미야시타 히데오 (宮下秀洋)
-
5승 7패탈락
스기우치 마사오 (衫內雅男)
-
5승 7패탈락
이와타 다쓰아키 (岩田達明)
-
4승 8패탈락
다카가와 가쿠 (高川格)
-
3승 9패탈락
하시모토 우타로 (橋本宇太郞)
-3승 9패탈락


3. 대회 결과

1961년 1월 18일부터 1962년 8월 9일까지 13명의 당대 고수들이 풀리그를 벌여 총 78국을 진행했다. 덤은 5집(현대식 5집반)에 빅백승이었다. 10국 중 1국은 나올 거라고 예상되던 빅이 본선 리그 총 78국 중 77국까지 한 번도 없다가 마지막 78국 오청원 9단의 대국에서 나왔다.

후지사와 히데유키 9단이 오청원 9단과 같은 9승 3패를 기록했지만, 오청원 9단은 9승 중 백으로 빅승을 한 경기가 있어 승점 계산에서 불리해져 후지사와 히데유키 9단이 초대 명인에 등극하였다. 사카타 에이오 9단은 8승 4패로 3위를 기록했다.

1962년 7월까지, 후지사와 히데유키오청원, 사카타 에이오를 꺾고 9승 2패로 선두를 달렸다. 전년도 제16기 본인방전에서 다카가와 가쿠를 꺾고 본인방에 오른 사카타 에이오는 한다 도겐, 기타니 미노루에게도 패하여 8승 3패, 오청원 또한 1961년 8월의 교통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8승 3패가 되었다. 8월 5-6일의 최종국에서 오청원-사카타 에이오전, 후지사와 히데유키-하시모토 쇼지전이 열렸고, 이 결과로 우승이 결정되게 되었다.

오청원-사카타 에이오전은 미나토구 시바 메이슈마치의 후쿠다야, 후지사와 히데유키-하시모토 쇼지전은 지요다구 기오이초의 후쿠다야에서 열렸다. 후지사와 히데유키가 하시모토 쇼지에게 투료하여 9승 3패가 되었다. 오청원-사카타 에이오전은 중반까지 사카타 에이오가 우세했지만, 오청원이 따라잡아, 오청원이 백번 지고 승으로, 9승 3패가 되었다. 그러나 지고 승은 정규 승리보다 하위라는 사전 규칙 때문에, 후지사와 히데유키의 우승, 제1기 명인이 결정되었다.

2기 대회부터는 명인 타이틀 보유자에 대한 도전기 형식으로 진행하는데, 리그 성적 상위 6명이 시드를 받아 차기 본선리그에 자동 진출하게 되고 최종 예선으로 3명이 본선에 올라와 전부 9명이 본선 리그를 진행하는 방식은 현재까지도 그 틀을 유지하고 있다.

3. 1. 최종 순위

당대 고수 13명이 풀리그로 대국을 진행하여 최종 순위가 결정되었다. 덤은 5집(현대식 5집반)에 빅백승이었다.

기사명후지사와 히데유키오청원사카다 에이오한다 도겐기타니 미노루하시모토 쇼지후지사와 호사이시마무라 도시히로미야시타 슈요스기우치 마사오이와타 다쓰아키다카가와 가쿠하시모토 우타로성적순위
후지사와 히데유키-------패--패--패--------------9승 3패1위
오청원--패---빅승--------패--패----------9승 3패2위
사카다 에이오--패--패---패--패----------------8승 4패3위
한다 도겐----패-------패--패----패--------패7승 5패4위
기타니 미노루----패----패---패------패------패--7승 5패4위
하시모토 쇼지----패--패-------패----패--패------7승 5패4위
후지사와 호사이--패----패----패-----패----패--패----6승 6패7위
시마무라 도시히로--패----패--패--패--패---------패--패--5승 7패탈락
미야시타 슈요--패--패--패--------패--패-----패--패--5승 7패탈락
스기우치 마사오--패--패--패--패--패------패--패-------5승 7패탈락
이와타 다쓰아키--패--패--패--패--패--패--------패-----패4승 8패탈락
다카가와 가쿠--패--패--패--패----패--패------패--패---패3승 9패탈락
하시모토 우타로--패--패--패----패--패--패--패--패--패-----3승 9패탈락



최종 순위는 다음과 같다.


  • 1위: 후지사와 히데유키 (9승 3패)
  • 2위: 오청원 (9승 3패, 빅백승 1회)
  • 3위: 사카다 에이오 (8승 4패)
  • 4위: 한다 도겐, 기타니 미노루, 하시모토 쇼지 (7승 5패)
  • 7위: 후지사와 호사이 (6승 6패)
  • 8위: 미야시타 슈요, 스기우치 마사오, 시마무라 도시히로 (5승 7패, 리그 강등)
  • 11위: 이와타 다쓰아키 (4승 8패, 리그 강등)
  • 12위: 하시모토 우타로, 다카가와 가쿠 (3승 9패, 리그 강등)


4. 명승부

오청원 9단과 사카타 에이오 9단의 최종전은 바둑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로 기록되었다.

4. 1. 오청원 대 사카타 에이오 (최종국)

초반은 호각이었으나, 하변 전투에서 흑(사카타)이 코를 활용하여 우변을 연타하며 우세를 확보했다. 백(오청원)은 상변의 흑 대마를 공격하며 반격에 나섰고, 좌변에서 팻감을 걸어 두 점을 움직인 후 수를 내러 갔다. 흑이 팻감을 해소하면서 상변과 좌하귀에서 후리카와리가 발생하여 복잡한 국면이 전개되었다. 이 시점에서 흑이 10집 정도 우세한 상황이었으나, 사카타 에이오 9단은 끝내기에서 실수를 범하며 5집 백(오청원)의 빅승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대국은 '극적인 지고(持碁)'라는 이름으로 바둑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만약을 대비해 기록계의 나카야마 노리유키가 별실에서 다시 놓기를 두 번이나 했다고 한다.

오청원(백) 대 사카타 에이오(흑) 최종국

5. 의의 및 영향

초대 명인전은 13명의 기사들이 풀 리그를 진행하여 1위를 명인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961년 1월 18일부터 1962년 8월 9일까지 총 78국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후지사와 히데유키가 첫 명인이 되었다. 2기부터는 명인 타이틀 보유자에게 도전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으며, 리그 상위 6명은 차기 본선 리그에 자동 진출하고, 최종 예선을 통과한 3명이 본선에 합류하여 총 9명이 본선 리그를 진행하는 방식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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